주원장은 황제가 되자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무시무시할 정도로
철저한 개혁을 해.
나라를 세우자마자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개혁을 시작했어.
그가 봤을 땐, 원나라가 망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거든.
귀족과 관리들의 타락, 그리고 농민들의 고통.
그래서 그는 아주 철저하게 기초부터 새로 짰어.
나라를 세운 자, '질서'를 만들다
모든 땅을 조사해서
땅의 소유자와 면적을 다시 기록하고,
몰래 차지한 귀족 땅은 회수했어.
황제도 직접 밭을 간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농업을 성스러운 일처럼 강조했지.
반면 농민들을 10가구씩 묶어서
백성을 감시할 수 있는
‘이갑제(里甲制)’도 만들었어.
'이갑제'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오가작통법' 같은 건데
여러 가구를 하나로 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있지만
서로 감시하게 하는 핵심은 같다고 할 수 있지.
관료 체계 정비 – '내가 직접 다 한다!'
심지어 관료 대신 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독재 체제를 만들 정도였어.
중앙정부에는 ‘육부(六部)’라는
행정조직을 두었지만,
사실상 모든 보고는 황제에게 직보하도록 했어.
그리고 승상(宰相) 제도를 폐지했어.
이건 마치 국무총리를 없앤 거야.
이유는 단순해. “내가 다 할 거니까
굳이 총리가 왜 필요해?”라는 거지.
그 결과 주원장은 중국 황제 중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이 되었고,
한편으론 가장 고독했던 황제이기도 해.
사실 말하자면 그는
황제보단, 스스로 모든 걸 감시하는
초강력 관리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주원장은 천하를 얻고 나서도
항상 과거의 배고픔과 고통을 기억했어.
그래서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게,
나라가 다시는 무너져내리지 않게
강한 통제를 선택했지.
하지만 그런 철권통치는 한편으론
지나친 공포 정치로도 이어졌어.
자신을 배신할까 두려워
많은 공신들을 숙청하기도 했지.
하지만 분명한 건,
한족의 땅을 되찾고, 나라를 다시 세운
그 한 걸음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민중 황제’의 이야기로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