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드디어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 바로 자기 손으로
나라를 세운 날, 1957년 말라야 독립(Merdeka)의
이야기를 해볼게.
이건 단순한 독립 선언이 아니라,
다민족이 함께 머리 맞대고 만든 나라,
그리고 말레이시아라는 정체성이
처음 형성된 순간이었어.
UMNO 중심의 독립 협상
1948년 말라야 연방이 생기고,
공산주의 반란 속에서도 UMNO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세력은 조금씩 정치적 힘을 키워갔어.
특히 '툰쿠 압둘 라흐만(Tunku Abdul Rahman)'
이라는 인물이 UMNO의 지도자가 되면서
독립을 위한 실질적 준비가 본격화됐지.
그는 “피를 흘리지 않고 독립하겠다”는 목표 아래,
영국과의 협상을 이어갔고, 무엇보다도
말레이인뿐만 아니라 중국계, 인도계 지도자들과의
연대에 힘을 쏟았어.
‘동맹(Alliance)’의 결성 – 민족 간 타협의 정치
탄쿠는 UMNO 단독으로 독립을 이루려 하지 않았어.
그는 말레이시아 화교협회 (MCA,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도인회의(MIC, 인도계)과
손을 잡고 ‘동맹(Alliance)’이라는 다민족 연합
정당을 만들었어.
이건 단순한 선거 연합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나라를 만들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었어.
말레이인은 정치적 주도권을,
중국계는 경제적 활동의 자유와 시민권을,
인도계는 종교·교육의 자유를 존중받기로
서로 타협한 거야.
1957년 8월 31일, 독립 선언
모든 준비가 끝났고, 1957년 8월 31일 새벽,
쿠알라룸푸르의 메르데카 광장(Dataran Merdeka)
에서 독립식이 열렸어.
탄쿠 압둘 라흐만은 군중 앞에서 세 번 외쳤지.
“메르데카! 메르데카! 메르데카!”
(자유! 자유! 자유!)
그 순간,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말라야의 국기가
올라가면서 말레이시아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어.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고민
독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어.
정치적으로는 다민족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경제적으로는 주요 산업과 자본이 외국 자본에 의해
지배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회적으로는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 간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지.
말라야에서 말레이시아로의 확장(예고)
이때는 아직 ‘말라야(Malaya)’라는 이름이었고,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 브루나이는 포함되지 않았어.
하지만 곧 연방 확대 논의가 시작되면서
1963년, 말레이시아(Malaysia)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지게 돼.
되짚어보면, 1957년의 말라야 독립은 수백 년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서로 다른 민족이 협력해
세운 평화적인 독립국의 탄생이었어.
말레이시아가 지금까지
다민족 국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뿌리는
바로 이 시기의 용기 있는 타협과 연대 덕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