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나라
이야기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서 시작돼.
그때 유럽은 ‘중세’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어.
사람들은 신만을 믿던 시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아름다움과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지.
이탈리아는 그런 변화의 중심이었고,
예술, 과학, 철학이 꽃피는 놀라운 시대였어.
그 한가운데, 토스카나 지방의 빈치(Vinci)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
그의 이름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 빈치’란 말은 빈치 출신이라는 뜻이야.
그림을 사랑한 소년
레오나르도는 혼외자였고,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하늘이 내린 관찰력과 손재주를 가지고 있었어.
그는 나뭇잎 하나, 새의 날개짓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무언가를 보면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르고,
손으로 그려낼 수 있었지.
소년 다빈치는 일찍이 피렌체의
유명 화가에게 견습생으로 들어가,
그림뿐 아니라 조각, 기계,
해부학, 건축까지 배우게 되었어.
그에게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궁금증 덩어리였어.
대표 작품 이야기 –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들어봤지?
다빈치가 그린 이 작은 초상화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야.
사람들은 그녀의 미소가 왜 그렇게 신비로운지
500년 넘게 이야기하고 있어.
그 비밀은 다빈치가 광학, 해부학,
심리학까지 섞어서 그렸기 때문이야.
눈과 입의 그림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감정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그리고 또 하나, ‘최후의 만찬’.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을 그린 이 벽화는
다빈치가 인물의 감정과 순간의 긴장감을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냈는지를 보여줘.
다빈치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관찰자, 빛과 공간을 조율하는 연출가였어.
과학과 공학의 천재성
하지만 다빈치는 붓만 든 예술가가 아니었어.
하늘을 나는 기계, 잠수복, 전차, 자전거까지!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그는
500년 전에 이미 설계하고 있었어.
그가 남긴 수천 장의 노트에는
날개 달린 비행기, 헬리콥터, 심지어
로봇 기사까지 그려져 있어!
그걸 보면 이렇게 말하게 돼:
“이 사람은 진짜 미래를 살다 온 사람 아닐까?”
그런데 다빈치는 실제로 이 기계들을
완성시키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어.
그는 만드는 것보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해부학부터 수학까지, 끝없는 호기심
다빈치는 사람의 몸속 구조를 알고 싶어서
밤마다 몰래 시신을 해부하곤 했어.
이건 당시로선 굉장히 금기시된 행동이었지.
하지만 그는 인간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뼈가 어떻게 연결되고,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만 했던 거야.
덕분에 다빈치의 해부학 스케치는 지금도
의학 자료로 사용될 정도로 정확하지.
그뿐만 아니라, 다빈치는 수학, 지질학,
식물학,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의 철학은 지금 시대에도 큰 감동을 주고 있어.
마지막 이야기 – 그림을 끝맺지 못한 천재
다빈치는 늘 완벽을 추구했기 때문에,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는 일이 드물었어.
모나리자도 죽기 직전까지 계속 수정했을 정도였지.
그는 생애 후반엔 프랑스 왕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가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다
67세에 조용히 생을 마감했어.
프랑스 왕은 그를 너무 존경해서,
"레오나르도는 나의 스승이었다”라고 말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었어.
그는 예술가였고, 과학자였으며, 철학자였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탐험가였지.
그의 인생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세상을 더 자세히 보고,
작은 호기심 하나도 놓치지 않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