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베트남이야기] 막 왕조와 후레의 대립 – 분열된 왕조와 민중의 혼란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24.
728x90
반응형

 

후레 왕조, 안정 속의 불안

이제 후레 왕조(Lê triều)는
안정된 정치와 문화 속에서
베트남 유교 국가의 완성형으로

성장하게 돼.

하지만 겉으로는 안정돼 보여도
속으로는 귀족의 권력 독점,


반란의 조짐, 왕권 약화 같은 긴장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지.

왕은 있는데 왕답지 못한 시기

후레 왕조(Lê triều)의 중후반으로 들어서면
왕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보다는
군벌과 귀족들이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해.

 

정치는 눈앞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의 손에 들어가고,
백성들은 왕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했어.

 

반란도 여기저기서 터졌고,
나라 전체는 흔들리는

땅 위의 집 같은 상태였지.

'막 당 중(Mạc Đăng Dung)'의 등장 – 후레 왕조를 뒤엎다

이 혼란 속에서
'막당중(Mạc Đăng Dung)'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원래는 후레 왕조(Lê triều)의 관리였지만,
점점 군사력을 키우고 세력을 쌓더니


1527년,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후레 왕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게 돼.

 

그리고 새로운 왕조,
막 왕조(Mạc triều)를 세우게 된 거야.

 

막 왕조

1527년 , 안흥왕(安興王)에 책봉된 권신 막등용 (莫登庸/Mạc Đăng Dung: 막당중)이 후여조 의

namu.wiki

출처 나무위키

왕조가 둘? 전국이 갈라지다

이제 베트남에는 하나의 나라에

두 개의 왕조가 생기게 돼.

  • 북쪽엔 막 왕조(Mạc triều),
  • 남쪽 산악 지역엔 후레 왕조(Lê triều) 

각각 자신들이 진짜 왕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 싸우기 시작하지.

후레 왕조(Lê triều)는 쫓겨났지만
“우리가 정통이다!” 하면서
지하정부처럼 저항을 계속했고,


막 왕조(Mạc triều)는 그런 후레를

완전히 없애려고 싸움을 이어갔어.

100년의 내전, 지친 백성들

이 대립이 몇 년 만에 끝난 것도 아니고,
무려 100년 가까이 이어졌다는 사실,

정말 충격적이지?

  •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 세금은 두 배로 내야 했고,
  • 나라 정체성은 혼란스럽고,
  •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지.

어디가 진짜 나라인지도 모르겠고,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백성들의 삶은

전쟁터 한가운데 놓여 있었어.

중국의 개입, 더 복잡해진 상황

그 와중에 명나라, 청나라 같은

중국 왕조도 이 싸움에 틈틈이

끼어들었고, 베트남 내부 정세는

더 복잡해져.

 

누구는 명나라와 손잡고,

누구는 청나라를 견제하고,
이런 식으로 외세를 끌어들인

싸움이 된 거야.

결국 후레의 승리, 하지만…

결국 이 오랜 싸움은
후레 왕조(Lê triều)가 막 왕조(Mạc triều)를

몰아내면서 끝나긴 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 전체가 피로에 빠졌고,

경제는 무너지고, 백성은 지쳤고,

정치는 더 약해졌지.

그리고 이 시기에 생긴
‘북쪽 vs 남쪽’의 구조와 감정은
훗날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해.

왕조는 있었지만, 왕답지 못했던 시대

이 시기는 겉으로는 왕도 있었고,

조정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진짜 나라를 위해

다스리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어.

 

백성들은 늘 전쟁과 세금에 시달리며
'도대체 이 땅의 진짜 왕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시기였던 거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