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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야기] 프랑스 식민지화 – 문명의 이름으로 다가온 침략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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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응우옌 왕조는 점점 더

서구 세력과 충돌하게 되고,
가톨릭 박해와 프랑스 선교사

문제가 이어지면서
결국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게 돼.

이후 프랑스 식민지화,
그리고 독립운동의 불꽃이 시작되게 돼.

 

이제부터는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아프고도 중요한 시기,
바로 프랑스 식민지화의

시작 이야기를 해볼게.


이건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문명’, ‘종교’,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침략이었고,


그 과정에서 베트남의 자주권과

문화, 종교, 정치 시스템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지.

가톨릭과 선교사 문제로 시작된 충돌

응우옌 왕조는 유교 국가였고,
가톨릭 같은 서구 종교에 대해

경계심이 컸어.


특히 선교사들이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왕권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띄자
가톨릭 탄압이 이어졌지.

 

프랑스는 이런 걸 빌미로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겠다”면서
외교 항의, 군함 파견, 무력 시위를 시작했어.

 

이건 단순히 선교사 문제를 넘어서
베트남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던 거야.

프랑스의 무력 개입 – 전쟁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1858년, 프랑스는
스페인과 함께 연합군을 꾸려
다낭(Đà Nẵng)을 공격하면서
본격적인 침공 전쟁을 시작했어.

처음엔 베트남도 완강히 저항했지만,
프랑스는 곧 '사이공(호치민시)'을 점령했고,
1862년엔 사이공 조약을 체결하면서
남부 지역 일부를 정식으로

프랑스 식민지로 만들었지.

 

이게 바로 '코친차이나 식민지'

(Cochinchina, 프랑스령) 의 출발점이야.

점점 무너지는 주권 – 북부까지 손을 뻗다

프랑스는 남부를 차지한 데

만족하지 않았어.
곧 북부와 중부에도 영향력을

넓혀가기 시작했고,


1883년과 1884년, 후에 조약을 통해
베트남 전체를 사실상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만들어버려.

 

응우옌 왕조는 남아 있었지만,
왕은 더 이상 주권자가 아니라
프랑스 총독의 허락 없이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는 꼭두각시가 된 거야.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되다

1897년, 프랑스는
베트남을 라오스, 캄보디아와 함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

(Union Indochinoise)에 편입시켜.

 

이때부터 베트남은 행정, 세금, 법,

교육, 언어까지 프랑스식으로

강제 변화되기 시작했어.

한문 대신 프랑스어와 알파벳이 도입되고

유교 대신 서구 교육이 퍼지고

철도, 항만, 광산 등 인프라는

프랑스를 위한 개발로 바뀌었지

누구를 위한 개발이었을까

프랑스는 “우리가 너희를 문명화시켜준다”

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원 수탈,

노동 착취, 토지 강탈이 중심이었어.

 

쌀, 고무, 광물은 전부 프랑스로 반출됐고

많은 농민이 땅을 잃고

도시 하층민은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했지.

 

그런데 이런 억압 속에서도
지식인, 농민, 상인, 스님, 학생들 사이에서
조금씩 저항의식과 민족주의 정신이

자라나기 시작했어.

 

이렇게 프랑스 식민지화는 총칼로만

이뤄진 게 아니었어.


종교, 교육, 외교, 경제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라의 중심을 바꾸어 놓은 시기였지.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라를 되찾으려는 작은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게 곧 베트남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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