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해 한 발의 총성으로
세상을 울렸던 사람,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나라 잃은 슬픔이 가득하던 조선 말기
옛날, 조선이 점점 힘을 잃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넘보던 시절이 있었어.
나라 안팎으로 혼란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나라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슬픈 시기였지.
그때, 조선 땅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어.
그중에서도 강직하고 용감한 한 남자,
안중근이 있었어.
한 발의 총성과 나라를 향한 외침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났어.
어릴 적부터 글공부도 잘하고,
무예에도 능한 똑똑한 청년이었지.
그는 나중에 천주교 세례를 받으며
'도마'라는 세례명을 가지기도 했어.
나라가 점점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던 무렵,
안중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그는 직접 의병에 참여해 일본군과 싸우기도 했지.
하지만, 그가 진짜로 마음속에 담고 있던 건
조선을 짓밟는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막는 것이었어.
하얼빈의 총성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러시아령 하얼빈 역에서
조선을 병합하려는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정확히 세 발 쏘아 쓰러뜨렸어.
"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이토를 죽였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고,
당당하게 붙잡혀,
법정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뜻을 밝혔다지.
"나라를 잃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물음에 행동으로 답했던 거야.
감옥에서도 멈추지 않은 외침 – ‘동양평화론’
감옥에 갇힌 안중근은
그곳에서도 붓을 들었어.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쓰며
'조선뿐 아니라 일본, 중국까지 평화를 이루는 길'을 이야기했지.
사람을 해친 죄로 처벌받기보다,
정의와 평화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희생이라는 걸
그는 끊임없이 세상에 알리려 했어.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죽음을 두려워 말라, 나라를 위한 일이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어.
그때 그의 나이, 겨우 31살이었어.
기억해야 할 이름, 안중근
안중근은 지금도 '의사(義士)'로 불려.
그건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정의로운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만 붙는 이름이야.
그가 남긴 총성은
단지 적을 쓰러뜨린 게 아니라,
잠자고 있던 민족의 가슴을 흔드는 외침이었어.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안중근은 말했어.
"한 사람이 정의를 외치면,
천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다."
그 믿음을 갖고 그는 행동했고,
우리는 그로 인해 다시 깨어날 수 있었어.
지금도 하얼빈 역 앞에는
안중근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가 남긴 글, 말, 뜻은
역사의 어두운 골목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우리 곁에 머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