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대왕 이후
잉글랜드는 점점 안정된 왕국으로 자리를 잡아갔어.
하지만,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지.
1066년,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이
자식 없이 죽자, 누가 왕이 될지를 두고
엄청난 왕위 계승 싸움이 벌어지게 돼.
그리고 그 싸움 끝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훗날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야.
왜 프랑스 사람이 영국 왕이 됐을까?
윌리엄은 지금의 프랑스 북부에 있었던
노르망디 공국(Duchy of Normandy)의 통치자였어.
그런데 그는 “에드워드 왕이 나에게 왕위를 약속했다”고 주장했지.
그래서 에드워드가 죽자마자
잉글랜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침공을 결심해.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이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왕이 됐는데,
윌리엄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게 되는 거야.
헤이스팅스 전투 – 왕이 직접 죽은 전쟁
윌리엄은 프랑스에서 대군을 이끌고
영국 남부로 상륙해.
그곳에서 벌어진 게 바로 헤이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야.
이 전투는 1066년 10월 14일,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야.
결과는?
윌리엄의 대승.
해럴드는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잉글랜드는 프랑스계 정복자에게 넘어가게 돼.
정복왕 윌리엄, 왕위에 오르다
전쟁에서 이긴 윌리엄은
곧바로 런던으로 진군해서 왕으로 즉위해.
그가 바로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야.
이때부터 잉글랜드에는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는 거지.
달라진 사회, 달라진 귀족
윌리엄은 잉글랜드의 귀족들을 싹 정리했어.
기존의 앵글로색슨 귀족들 대부분을 몰아내고
노르만 귀족들로 교체했지.
그리고 이 노르만 귀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봉건 제도를 확립했어.
프랑스식 귀족 문화와 언어가 확 들어오면서
영국 사회는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지.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문화
이 시기부터 영국에는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서민층은 영어를 쓰는 이중 언어 체제가 자리 잡았어.
그래서 영어는 이후에
프랑스어, 라틴어, 노르만어 등 다양한 언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금의 복잡하고 풍부한 언어로 발전하게 된 거야.
영국의 역사, 두 얼굴을 가지다
윌리엄의 정복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어.
한 나라의 문화, 정치, 언어, 사회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린 사건이었지.
그리고 이 사건은
앞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복잡한 관계의 출발점이 되기도 해.
영국 땅은 영국 땅인데,
왕은 프랑스 말을 하고 프랑스 법을 따르던 시기,
영국인들의 정체성은 더욱 복잡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