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 왕조 이후 잉글랜드를 다스리게 된
플랜태저넷 왕조(Plantagenet dynasty)는
처음부터 보통 왕조가 아니었어.
왜냐면 이 왕조의 시작을 연 사람이
프랑스 앙주의 귀족이자,
프랑스 땅에서 엄청난 영지를 가진 인물이었거든.
그의 이름은 헨리 2세(Henry II).
이 사람이 영국 왕이 되는 순간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운명은 엉켜버렸어.
헨리 2세, 프랑스 땅 절반을 가진 영국 왕
헨리 2세는 앙주 백작 출신이었고,
그 자체로도 프랑스 서부의 땅을 넓게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프랑스의 가장 강한 여왕,
아키텐의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영토 절반 가까이를 갖게 됐지.
그런 상태에서 영국 왕위까지 물려받은 거야.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일부, 웨일스,
그리고 프랑스의 노르망디, 브르타뉴, 앙주, 아키텐까지 포함됐지.
사람들은 이걸 ‘앙주 제국’이라고 불렀어.
물론 진짜 제국은 아니지만,
하나의 왕이 다스리는 거대한 땅덩이라는 뜻에서 붙인 말이야.
왕과 교회의 싸움 – 토머스 베켓 사건
헨리 2세는 행정력도 뛰어나고 야망도 컸지만,
문제를 하나 만들어버려.
그게 바로 토머스 베켓(Thomas Becket) 사건이야.
헨리가 자신의 친구였던 토머스를
대주교로 임명했는데,
이 친구가 교회 편을 들면서 헨리와 싸우기 시작한 거야.
결국 헨리의 분노에 찬 말 한마디에
토머스가 성당에서 살해당하고 말았지.
이 사건은 왕의 권력과 교회의 권력의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야.
그리고 토머스는 훗날 성인으로 추앙받게 돼.
리처드 사자심왕과 존 왕 – 형제의 대비
헨리 2세의 아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리처드 1세(Richard I)야.
별명은 ‘사자심왕(Lionheart)’이지.
그는 십자군 원정으로 더 유명하고,
정작 영국에는 별로 오래 머무르지 않았어.
그만큼 영국보다 유럽 전체를 무대로 움직인 왕이었지.
그 다음 왕이 된 건
악명 높은 동생, 존 왕(John)이야.
이 사람은 프랑스 땅을 거의 다 잃고,
귀족들과도 사이가 나빠서
결국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강제로 서명하게 돼.
이건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룰 거야.
영국 왕이 프랑스 땅을 다스린다는 것의 의미
이 시기의 핵심은 이거야.
영국 왕이 프랑스 왕의 신하이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강할 수도 있었다는 모순.
이건 프랑스 입장에서 정말 불편한 구조였고,
결국 이 모순은 훗날 백년전쟁의 원인으로 이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