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전쟁 – 요크와 랭커스터의 피의 내전” 이야기를 해볼게.
이번엔 외부와의 전쟁이 아니라,
왕실 내부에서 벌어진 싸움이야.
한마디로, 왕좌의 게임 – 현실판이 시작된 거지.
이 전쟁은 1455년부터 1485년까지,
무려 30년 넘게 이어진 왕위 계승 전쟁이야.
두 가문이 서로 “우리가 정통이다!” 하며
영국 왕좌를 놓고 싸운 거지.
- 요크 가문(York): 하얀 장미의 상징
- 랭커스터 가문(Lancaster): 붉은 장미의 상징
그래서 이 전쟁을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이라고 불러.
왜 싸우게 됐을까?
이 싸움의 뿌리는 백년전쟁의 여파야.
긴 전쟁 끝에 나라가 피폐해지고,
왕권도 약해졌지.
그 중심엔 헨리 6세(Henry VI)가 있었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고,
왕으로서 리더십도 부족했어.
그 틈을 타서,
요크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York)가
“왕이 이 모양인데, 내가 대신 나라를 안정시키겠다”면서
정치를 장악하려 했지.
결국 이게 무장 충돌로 번지고,
왕위를 놓고 두 가문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으로 번졌어.
왕이 수시로 바뀌는 혼란의 시기
이 시기의 특징은 뭐냐면,
왕이 수시로 바뀌고,
전쟁이 벌어졌다 멈췄다 하며
계속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다는 거야.
요크 가문은 한때 승리해서
에드워드 4세(Edward IV)를 왕으로 세웠고,
다시 랭커스터 쪽이 반격해서
헨리 6세가 복위되기도 해.
이런 식으로 권력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백성들은 고통에 빠지고,
귀족들 사이의 피의 복수는 끊이지 않았지.
최후의 결전, 보즈워스 전투
이 전쟁의 마지막은
1485년, 보즈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 Field)에서 결정돼.
이때 랭커스터 가문의 먼 친척,
헨리 튜더(Henry Tudor)가
요크 가문의 리처드 3세(Richard III)를 물리치고 왕이 되지.
이 헨리가 바로 헨리 7세(Henry VII),
그리고 새로운 시대,
튜더 왕조(Tudor dynasty)의 시작이야.
화해의 상징, 장미의 통합
헨리 7세는 정치적으로 똑똑했어.
자신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지.
이 결혼으로 두 가문을 화해시켰고,
그걸 상징하는 게 바로
빨간 장미와 흰 장미가 합쳐진 ‘튜더 장미(Tudor Rose)’야.
이제 왕권은 한 사람에게로 모였고,
내전의 시대는 끝나게 돼.
영국 왕실이 배운 것
이 피의 싸움은 영국 왕실에게 큰 교훈을 남겼어.
정통성, 리더십, 안정된 통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지.
또한 이 사건은 이후 영국 역사에서
정치적 균형과 절제가 왜 중요한지를
깊게 새기게 만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