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리우스 대왕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로 넘어가.
이제 무대는 고대 세계 최고의 제국
페르시아와 작지만 끈질긴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의 거대한 충돌이야.
말 그대로 역사 속에 남을
명장면들이 펼쳐지는 시기지.
초강대국과 도시국가의 충돌, 그 끝은?
아버지의 실패를 되갚아주겠다
다리우스 대왕은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에 패하고 큰 충격을 받았지.
하지만 그 복수를 준비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어.
그 뒤를 이은 아들이 바로
크세르크세스 1세,
지금 이야기할 주인공이야.
그는 왕이 되자마자, “그리스에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굳혔어.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아예 그리스를 통째로
제국에 편입시키겠다는 야심이 있었던 거지.
페르시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크세르크세스는 준비부터 달랐어.
말 그대로 고대 세계 최강의 전쟁 준비였어.
육군만 수십만 명, 바다엔 수천 척의 배
군사뿐만 아니라, 보급로와 다리까지
미리 준비했지.
→ 대표적인 게 헬레스폰토스
(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에 만든
'부교(떠 있는 다리)'야.
페르시아군이 유럽 쪽으로 진격할 수 있게
바다 위에 다리를 만든 거야.
테르모필레 전투 – 300명의 스파르타
가장 유명한 전투는 바로
테르모필레 전투(기원전 480년)야.
이 전투는 영화 ‘300’으로도 유명하지?
그리스 쪽은 여러 도시국가가 연합했지만,
병력은 턱없이 부족했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300명의 정예병이
좁은 협곡을 이용해 수십만
페르시아군을 막아섰지.
결국 그들은 전멸했지만,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어.
페르시아 입장에선 이겼지만, 이 저항이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뭉치게 만들었어.
아테네는 불타고, 그리스는 후퇴했지만…
페르시아군은 테르모필레 이후
거침없이 진격했고, 아테네도 함락당했어.
도시가 불타고 시민들은 피난을 떠났지.
겉보기엔 완전히 페르시아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진짜 전쟁은 바다 위에서
벌어지게 돼.
살라미스 해전 – 운명의 반전
아테네 출신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 함대를 이끌고, 살라미스 섬
근처 좁은 해협으로 유인해.
거대한 페르시아 함대는
넓은 바다에서는 유리했지만,
좁은 해협에서는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지형에 갇혀버렸어.
결국 그리스 함대가 대승을 거두고,
크세르크세스는 충격을 받지.
곧바로 자신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일부 병력만 남겨둬.
이 해전이 사실상 페르시아의 유럽 정복 시도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야.
왜 그 큰 제국이 작은 도시국가들한테 막혔을까?
사실 숫자만 보면 말이 안 되는 전쟁이었어.
근데 페르시아는 너무 큰 제국이라
한 명령이 수천 km를 돌고 돌아 전달돼야 했고,
병사들 대부분은 페르시아 출신이
아닌 다른 민족들이었어.
사기나 충성심, 전투 방식이
제각각이었던 거지.
반면 그리스는 비록 작고 분열되어 있었지만,
자기 땅, 자기 집, 자기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어.
그 절박함이 결국 전세를 뒤집은 거야.
크세르크세스의 귀환, 그리고 그 이후
크세르크세스는 돌아와서
다시 제국을 정비했지만,
그리스 전쟁의 실패는 제국의 상처로 남게 돼.
페르시아 제국은 여전히 강했지만,
이때부터 조금씩 내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
그리고 150년쯤 뒤, 저 멀리
마케도니아에서 등장한
한 젊은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또는
알렉산더)에 의해…
제국은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되지.
크세르크세스는 분명 강력한 군주였어.
하지만 전쟁은 단순한 힘만으로
이기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줬지.
전략, 민심, 지형, 의지… 이 모든 요소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걸 알려준 거야.
[역사와 전쟁 '술술' 스토리] 고대 그리스 해군: 삼단노선과 살라미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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