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카자르 왕조가 무너지고,
진짜 개혁을 외치는 강한 군인,
레자 샤가 등장하면서
팔라비 왕조가 시작돼.
이제 이란은 오랜 혼란과
반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개혁의 길로 나아가려고 해.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레자 샤 팔라비(Reza Shah Pahlavi)**야.
그는 왕족도 귀족도 아니었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나라를 바꾸고자 했고,
이란을 한층 더 근대적인 국가로 바꾸는
거대한 실험을 시작하지.
그럼 이제 이란 현대사의 또 다른 막을 열어볼게.
왕정 개혁, 근대화, 그리고 폭풍의 전야
무너져가는 카자르 왕조, 그리고 등장한 강철 군인
카자르 왕조는 이미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힘도, 존경도 잃은 상태였어.
그러던 중, 1921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 중심 인물이 바로 레자 칸,
후일의 레자 샤야.
처음엔 총리로 올라섰지만,
1925년엔 스스로 왕이 되어
팔라비 왕조를 시작해.
이제 이란은 새로운 방향을 잡게 돼.
레자 샤는 근대화를 밀어붙였어
그는 ‘근대국가’라는 목표 하나로
모든 걸 밀어붙였어.
- 철도 건설, 산업 기반 확충, 학교와 병원 설립
- 유럽식 복장 강제, 여성의 히잡 착용 금지,
- 이슬람 율법 대신 국가 법전 도입
이건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이슬람 전통을 정면으로 뒤흔드는
혁명적 변화였지.
게다가 국호도 바꿨어.
1935년부터 '페르시아' 대신 '이란(Iran)'이라는
이름을 공식 사용하게 해.
이건 민족적 정체성을 새로 세우겠다는 상징이었지.
국가주의와 중앙집권 – 하지만 너무 거셌어
레자 샤는 지방의 부족 세력을
강제로 무장 해제시키고,
모든 권력을 중앙정부로 집중시켰어.
종교 지도자들도 견제했고,
반대파는 가차 없이 숙청했지.
자유는 줄어들었고, 언론은 통제당했고,
‘말 잘 듣는 국민만이 좋은 국민’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어.
이란은 외형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내면의 민주주의는 탄압당하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외세의 손길은 여전히 남아 있었어
레자 샤는 이란의 자주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
그래서 영국과의 석유 계약을
불공정하다고 비판하고,
독일과 가까운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했어.
문제는… 그게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는 거야.
영국과 소련은 “레자 샤가 독일 편이다”
라고 판단하고 1941년, 이란을 침공해버려.
레자 샤는 강제로 퇴위당하고,
그의 아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왕위를 이어받게 돼.
이제 이란은 외세와 국민 사이에서 흔들리게 돼
레자 샤가 닦아놓은 근대화는 의미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부재,
외세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기억,
국민과의 거리감은
그 아들 시대에 더욱 심화되게 돼.
그리고 이건 훗날
이슬람 혁명으로 이어지는 불씨로 남게 되지.
팔라비 왕조는 이란을
단순한 중세적 왕국에서
유럽식 근대국가로 바꾸려 한 시도였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급했고, 너무 억압적이었고,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다 담지 못한 개혁이었지.
그 결과, 이란은 겉은 달라졌지만
속은 더 깊은 갈등으로 향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