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세워진 인도네시아가
전쟁의 혼란과 정치 갈등 속에서
진짜 하나의 나라가 되기 위해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 그리고 수카르노가 어떻게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어떤 이상을
꿈꿨는지를 알아볼게.
이제는 독립을 이뤄낸 인도네시아가
“이제 우리가 나라를 운영해야 할 때”라는
전혀 새로운 싸움에 들어간 이야기를 해볼 차례야.
총과 무기로부터의 독립은 얻었지만,
수천 개 섬, 수백 개 민족, 다양한 종교와 문화,
그 모든 걸 하나로 묶는 건 훨씬 더 복잡한 일이었지.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수카르노(Soekarno)'였어.
1945년 독립 선언 이후,
수카르노는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어.
하지만 그때 인도네시아는
그냥 ‘독립한 나라’가 아니었어.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식민지 질서가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라 자체가
하나로 굳어지지 않은 상태였지.
한번 생각해보면, 17,000개가 넘는 섬,
300개 이상의 민족과 언어, 이슬람, 힌두교, 불교,
기독교, 원시신앙까지 다양한 종교,
심지어 수마트라, 자바, 발리, 술라웨시, 파푸아는
서로 말도, 문화도, 경제 구조도 전혀 달랐어.
이걸 하나로 묶는다는 건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지.
수카르노는 그걸 해내기위해 '판차실라(Pancasila)'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어.
이건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국가 철학이야.
- 신에 대한 믿음
- 인도적인 인간성
- 인도네시아의 통합
- 대중에 의한 민주주의
- 사회 정의
이 다섯 가지는 종교, 민족, 계급, 지역을 초월해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인도네시아인이다”라는
기본 정신이었지.
하지만 이상만으로 국가는 움직이지 않았어.
1949년, 네덜란드가 최종적으로 독립을 인정한 후에도
내전, 반란, 연방제 논쟁, 경제 혼란,
정당 난립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카르노는
점점 더 강한 대통령 권한을 원하게 돼.
그래서 1959년엔 의회를 해산하고 '지시 민주주의
(Guided Democracy)' 체제를 선언하지.
쉽게 말하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나 혼자 중심을
잡겠다는 방식이었어.
이 체제에서 수카르노는
- 민족주의,
- 종교(특히 이슬람),
- 공산주의(당시 강했던 PKI당)
이 세 세력을 모두 껴안으려 했어.
이념 갈등을 통합해 하나의 인도네시아를
만들려 한 시도였지.
그는 세계적으로도 아시아·아프리카
중립국가들의 지도자로 활동했고,
반식민주의, 반서구주의의 상징이 되었어.
1955년에는 반둥 회의를 열어서
비동맹운동의 길을 여는 큰 외교 성과도 냈지.
하지만 내부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어.
경제는 엉망, 물가는 폭등, 민심은 갈라졌고,
특히 군과 공산당의 긴장은 폭발 직전이었어.
결국 1965년, 공산당 쿠데타 미수 사건
(G30S/PKI)을 계기로 수카르노의 권력은
급격히 무너지게 돼.
그 이후 등장은 바로…
군 장성 '수하르토(Suharto)'였지.
그건 다음 이야기의 중심이야.
정리하자면 수카르노는 독립을 이끈 영웅이자,
혼란의 시대를 통합하려 한 지도자였어.
그의 시대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인도네시아가 ‘우리의 나라’로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초를 세운 시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