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도네시아 이야기] 자바 전쟁과 디파느가라 – 왕자의 분노가 식민지를 흔들다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25.
728x90
반응형

 

이제 본격적으로 네덜란드 식민지 체제가

제도화되고, 자바 전쟁, 디파느가라의 항쟁,

강제 재배 제도(Cultuurstelsel) 같은
더 깊은 착취와 더 강한 저항의 시대로 들어가게 돼.

 

이제부터는 식민지 착취에 맞선 인도네시아인의

첫 대규모 무장 저항, 바로 자바 전쟁

(Java War, 1825~1830)과 그 중심에 섰던 인물,

디파느가라(Diponegoro)의 이야기야.

 

디파느가라

욕야카르타 술탄국의 왕자로, 디파느가라 전쟁으로 유명하며 인도네시아 의 3대 독립 영웅들 중 하나이다. 생애 왕

namu.wiki

출처 나무위키

 

이건 단순한 전투 이야기가 아니야.
왕족이 백성을 위해 총을 들었고,
농민과 성직자, 상인, 귀족까지 함께 싸운

전 민중의 항쟁이었지.

 

19세기 초, 자바섬은 이미
네덜란드 동인도 식민지의 중심이 되어 있었어.

 

VOC는 망했지만, 그 뒤를 이은 네덜란드 정부가

직접 식민통치를 이어가고 있었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현지 왕실과 귀족이 허울뿐인 지위를

유지한 채 모든 실권과 자원은 네덜란드 관리들

손에 있었어. 거기다 백성들은 세금과 강제 노동,

종교 억압에 시달리고 있었지.

그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디파느가라야.
그는 자바 마타람 왕실의 후손이었지만,
왕위를 잇지 못하고 은둔하며 신앙과 민중의 삶을

지키려 했던 인물이었어.

 

하지만 네덜란드가

그의 조상 묘 위로 도로를 깔고, 종교적 전통을 무시하며,

마을마다 부당한 세금을 걷자 그는 마침내

"이건 더는 참을 수 없다"며무기를 들게 돼.

 

1825년, 디파느가라는 성직자, 귀족, 농민, 상인,

무슬림 지도자들과 함께 자바 중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건 곧 전 자바섬으로 번지는

민중 전쟁이 되었어.

 

그는 이 전쟁을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성전(Jihad)'
즉 믿음과 정의를 위한 싸움으로 선언했지.

디파느가라의 군대는 훈련된 정규군이 아니라
게릴라 방식으로 밀림과 산악을 이용해 싸웠어.

 

하지만 네덜란드는 막대한 병력과 자금,
그리고 정보전과 내부 이간질을 통해
점점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어.

 

결국 1830년, 디파느가라는 협상장을 가장한

네덜란드의 계략에 빠져 체포되고 말지.

 

그는 종신 유배형에 처해져
마카사르에 갇혀 생을 마감하게 돼.

하지만 이 전쟁은 네덜란드에게도 막대한 피해와

비용을 안겼고, 이대로는 식민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했지.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겐

“우리도 싸울 수 있다”,
“왕과 민중이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자부심과 민족의식의 불씨를 남겨줬어.


디파느가라는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의 ‘첫 영웅’으로 기억돼.

 

인도네시아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있고,
많은 도로, 학교, 군부대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르고 있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