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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 영국, 왜 인도로 갔을까?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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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신료와 부, 그리고 제국의 욕망>

1. 향신료와 부의 유혹 – 인도는 부자의 나라였다

16세기~17세기 초, 유럽인들에겐
인도는 ‘황금과 향신료의 땅’으로

알려져 있었어.

후추,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는
작은 양만으로도 큰돈이 되는

고급 상품이었고 인도의 면직물,

보석, 염료, 차는 유럽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

즉, 인도랑 무역하면 떼돈 번다는 생각이
유럽 열강 사이에 퍼져 있었어.

2. 포르투갈 – 유럽 최초로 인도 진출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캘리컷(Kozhikode)에 도착해.


이게 유럽과 인도를 잇는

직접 항로의 개척이었어.

 

포르투갈은 이때부터

인도 해안에 무역항을 만들고,
무역뿐 아니라 해상 패권도 장악하려 했지.

 

하지만 포르투갈의 규모는 작았고,
진짜 경쟁은 나중에 시작됐어.

3. 네덜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진입

1600년대 초,
유럽 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해.

 

이 회사들은 단순한 무역회사가 아니라,
군대와 군함, 조약 체결 권한까지 갖춘
‘국가 지원의 민간 제국 확장 도구’였어.

4. 영국 동인도 회사, 인도에 첫발을 딛다

영국은 1600년에

엘리자베스 1세의 특허를 받고
동인도 회사를 설립,


1612년에는 인도 서부 '수랏(Surat) 항'에
처음으로 상관(무역 거점)을 세워.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마드라스 (남부), 봄베이 (서부),

벵골 (동부) 등지에 거점을 확장하며

상업 기반을 넓혀갔지.

5. 무굴 제국이 허락했을까?

초반엔 ‘허락받은 손님’이었어.

 

당시 인도는 무굴 제국 전성기,
황제는 '샤 자한'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정면 충돌을 피하고 공손하게 거래했어.

(타지마할을 남긴 인물이 '샤 자한'!)

 

무굴 황제에게 공물과 선물을 바치며

우리는 그저 장사꾼입니다하고 말했지.

 

그래서 초반에는 무역만 하고 돌아가는

외국 상인에 불과했어.

6. 계기 ① 무굴 제국의 약화

하지만 1700년대 초,
아우랑제브 황제가 죽고 난 뒤
무굴 제국은 급속히 무너지고 분열해.

 

중앙의 힘은 약해지고,

지방 군벌과 번주국들이 자기 권력을

쥐려 싸우기 시작했지.

 

이때부터 영국은
돈 + 군대 + 외교를 활용해서
이쪽 편, 저쪽 편에 붙었다가 나중에 다 먹는
전형적인 식민지 전술을 펼쳐.

7. 계기 ② 유럽끼리의 싸움, 인도에서 터지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경쟁 관계였고,
이 경쟁이 인도에서도 군사 충돌로 번져.

 

대표적인 전쟁은 '카르나틱 전쟁(Carnatic Wars)'

이 전쟁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누르고

인도에서 우세를 확보했어.

결정타는 1757년 플라시 전투,
영국 동인도 회사가

벵골의 나왑(지방 장관 정도)을 무찌르고
사실상 인도 동부를 장악하면서
식민지화가 본격화돼.

 

그러니까 영국이 인도에 들어오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경제적 탐욕, 정치적 계산, 제국 간 경쟁,

그리고 인도 내부 혼란이 맞물린 결과였어.

 

처음엔 겸손한 손님이었지만,
결국에는 주인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식민 지배자가 되어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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