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도에서 갈라져 나와
'신앙의 나라'를 꿈꿨지만,
그 안에는 독재, 분열, 테러,
종교 극단주의와의 전쟁 같은
복잡하고도 험난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세계 속에서의 위치를
조금씩 다져온 나라가 바로 지금의 파키스탄이야.
1. 민주주의는 있었지만, 항상 불안했다
파키스탄은 원래 민주공화국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민간정부와
군부가 번갈아 정권을 잡는 구조였어.
대표적인 인물들을 보면
- 지아 울 하크(1977~1988):
군사 쿠데타로 집권 → 철저한 이슬람화 정책
(예: 코란 기반의 법률 확대, 여성 증언의 가치 축소 등) - 베나지르 부토(1988~1990, 1993~1996):
파키스탄 최초의 여성 총리. 하지만 군부 견제, 부패 의혹, 암살 시도 등 시련 많았음 - 페르베즈 무샤라프(1999~2008):
또 다른 쿠데타로 집권 → 미국과 손잡고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
2. 종교와 정치 –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파키스탄은 이슬람공화국이라는
헌법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문제는 이슬람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해석과 분파들 사이에
갈등이 커졌다는 점이야.
순니파(수니파)가 다수지만, 시아파는 때때로
차별과 테러의 대상이 됐고
기독교·힌두교 등 소수 종교인들은
신성모독죄 등으로 위협받으며 살고 있어.
예를 들어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무슬림이 아닌 이웃을 고발하면,
재판도 끝나기 전에 폭력 사건이 벌어지기도 해.
3. 테러와의 전쟁 – 안팎으로 싸우는 나라
2000년대 들어서면서
탈레반,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파키스탄 내 국경지대에서 세를 확장했어.
미국의 911 테러 이후,
파키스탄은 미국과 협력해서
이들 단체를 진압하기 시작했고,
그 대가로 내부에서 반미 감정과
테러 보복이 이어졌지.
특히 2014년 페샤와르 학교 테러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어.
2014년 페샤와르 학교 학살 - 요다위키
2014년 페샤와르 학교 학살 2014 Peshawar school massacre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육군 공립학교와 대학에 대한 테릭-아이-탈레반 테러 공격 2014년 12월 16일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에 위치한 육군 공립
yoda.wiki
출처 요다위키
탈레반 무장세력이 학교에 침입해
150명 넘는 학생과 교사를
무차별 살해한 사건이었지.
이 사건 이후, 파키스탄 정부는 극단주의
근절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돼.
4. 그래도 계속 살아남는 민주주의의 불씨
파키스탄은 끊임없는 혼란 속에서도
군부 통치를 끝내고 민간 정부로
이양한 경험이 있어.
대표적인 예로
① 임란 칸(Imran Khan)
한때 크리켓 국가대표 출신의 영웅
→ 정치인으로 변신 → 2018년 총리 당선
'부패 없는 새 파키스탄'을 외쳤지만,
정치적 압박으로 2022년 해임
② 그 외에도 선거제도, 의회, 헌법 기능은
여전히 존재하고, 시민사회와 언론의
저항도 계속되고 있어.
한마디로 말하면 민주주의가 항상
성공하진 않았지만, 완전히 꺼지지도 않았어.
5. 오늘날 파키스탄 – 세계 속의 이웃, 혹은 숙제
지금의 파키스탄은 그 어떤 나라보다
복합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어.
핵 보유국이자 테러의 위협 속에
있는 나라이면서도
인도와 경쟁하는 전략 요충지,
중국과 가까운 동맹국,
동시에 서방과도 협력 관계가 있지.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일대일로
(BRI, 중국의 신 실크로드 정책)에 깊이
관여하면서 인프라 발전과 채무 의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어.
6. 흔들리는 땅 위에서 ‘정체성’을 찾는 나라
파키스탄은 종교를 중심으로 독립했지만,
그 종교가 곧 정치가 되고,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 나라야.
그래도 그 안에는 새로운 세대,
여성운동가, 언론인, 예술가, 지식인들이
계속해서 자기 나라의 길을 고민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