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이 조선에 발을 들이게 되자,
그다음 단계는 조선 내부 사정에 개입하는 거였어.
그리고 그 시작이 된 사건이 바로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이야.
먼저 임오군란부터 이야기해 볼게.
당시 조선은 오랜 세월 구식 군대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개화 정책에 따라 별기군이라는 신식 군대를 만들었어.
문제는 여기에 돈과 관심이 집중되면서,
기존의 구식 군대는 급료도 못 받고 푸대접을 받게 된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구식 군인들이
마침내 1882년, 폭동을 일으켰지.
이게 임오군란이야.
그 폭동은 단순히 군인의 불만으로 끝나지 않았어.
점점 확대되면서 왕비 민 씨 일가의 집안,
그리고 조선에 있던 일본 공사관까지 습격당했어.
결국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었다”며 군대를 보내고,
조선과 제물포 조약이라는 걸 맺게 돼.
이 조약의 핵심은 일본이 입은 손해에 대해
조선이 배상금을 물고,
일본 군대를 조선에 주둔시킬 수 있도록 한 거야.
즉, 이때부터 일본은 조선 땅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2년 뒤, 또 하나의 사건이 터져.
바로 갑신정변(1884)이야.
이건 개화파 지식인들이
“이대로는 조선이 망한다”며
급진적인 개혁을 하려고 시도한 쿠데타야.
주도한 인물로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
이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왕궁을 장악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려고 했어.
하지만 이 정변은 단 3일 만에 실패하고 말아.
왜냐면 조선 정부가 청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였고,
그 청군이 개화파를 진압했거든.
결국 일본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걸 보며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확실히 느꼈어.
“무역만으론 안 되겠구나. 조선은 무력과 외교로 밀어붙여야겠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은 그래서 일본이
조선의 내부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조선을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만들려는 계기가 되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