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오키나와(沖縄),
하지만 원래 이 지역은 류큐 왕국(琉球王国)이라는
독립된 나라였어.
이 왕국은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었는데,
중국·일본·동남아를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지.
15세기부터 류큐는 중국 명나라와
조공 관계를 맺으면서도, 동시에 일본 사쓰마번과도
관계를 유지하는 ‘이중 외교’ 전략으로 살아남아왔어.
덕분에 류큐 문화는 중국풍도 있고 일본풍도 있고,
완전히 독자적인 문화도 있었던 거야.
언어, 종교, 복식까지 전부 독특했지.
그런데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외부로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류큐 왕국도 그 타깃이 됐어.
1872년, 일본은 류큐 국왕을 강제로
‘류큐 번주’로 격하시키고,
1879년엔 아예 왕국을 폐지하고 ‘오키나와현’이라는
일본의 행정구역으로 만들어버려.
류큐 왕국은 공식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왕족들도 일본 정부에 의해 도쿄로 끌려갔지.
이 과정은 말 그대로 ‘무혈병합’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강제적인 흡수였어.
당시 류큐 사람들 중에는
반대 운동을 벌이는 이들도 있었고,
청나라에 도와달라며 외교적 요청을 보냈지만 무시당했지.
문제는 그 이후야.
일본은 오키나와에 대해
‘일본인 만들기’ 정책을 펴기 시작했어.
학교에서 류큐어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 쓰게 하고, 류큐의 전통 신앙이나
문화는 미신이라며 금지했어.
심지어 스스로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바꾸도록 압박했지.
그 뒤, 제2차 세계대전 중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를 지키는 최전선으로 이용되면서
가장 격렬한 전장이 됐고, 민간인들의 피해가 엄청났어.
그 아픔은 지금도
오키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남아 있어.
오키나와의 병합은, 일본이 내부 식민지화를
시작한 첫 사례로 볼 수 있어.
그리고 이 지역이 외부 식민지(예: 대만, 조선)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