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은 진짜 수도(首都)를 정하고,
그곳에서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불교가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시대,
바로 '나라 시대(奈良時代)'로 들어가게 돼.
(서기 710년~794년)
수도, 나라(헤이조쿄)에 머무르다
아스카 시대까지는 수도도 왕도 계속 이사 다녔어.
왕이 바뀔 때마다 “전 왕의 기운이 남아 있으니
새 수도로!” 하고 옮겼거든.
그런데 710년, 드디어 수도를 한 곳에 정하게 돼.
그게 바로 '나라(奈良)', 정확히는 헤이조쿄(平城京)야.
이 도시는 중국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델로 만들었고,
격자무늬 도로, 궁궐, 관청, 시장까지 제대로 갖춘
일본 최초의 계획도시였어.
즉, 이때부터 일본은 '수도에서 나라가 움직인다'는
개념을 처음 정착시킨 거야.
불교, 정치와 하나가 되다
나라 시대는 불교가 완전히 국가 시스템에
들어간 시기야.
당시 천황이었던 '쇼무 천황(聖武天皇)'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해.
“불법(佛法)은 곧 왕법(王法)이다.”
즉, 불교가 바로 통치의 길이다.
그래서 나라 전역에 국영 사찰을 짓고, 수도엔
거대한 도다이지(東大寺)를 세워.
거기엔 지금도 남아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 대불(大仏)이 모셔져 있어.
도다이지 :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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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여행정보
이 대불은 단지 종교상이 아니라,
“나는 하늘과 연결된 왕이다”라는 상징이었지.
불교는 왜 이렇게까지 정치 중심이 되었을까?
사실 그 배경에는 잦은 천연재해, 흉년, 전염병 같은
불안한 시대 상황이 있었어.
왕과 귀족들은 이런 재난을 불교의 힘으로
다스리려고 했고, 자연스럽게 승려들이 정치에까지
개입하게 되었지.
그 결과, 승려들의 권력 강화, 귀족과 사찰의 결탁,
불교 귀족의 등장이 이어졌어.
율령 체제도 본격 작동
이 시기에는 중앙 관료제가 자리 잡았고,
인구조사(호적), 토지세, 군사 제도, 교육 제도 같은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이름과 신분, 사는 지역까지
등록되어야 했고, 왕은 점점 하늘이 아닌 제도 속에서
권위를 갖게 된 시대였지.
여성 천황과 기록의 시작
나라 시대엔 여성 천황인 겐메이 천황,
겐쇼(겐메이 천황의 딸) 천황도 있었고, 이들이
주도해서 일본 최초의 정사(공식 역사서)인
『고지키(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편찬돼.
이건 왕의 정통성을 신화로 포장하면서도,
‘기록으로 남기는 나라’로의 첫 걸음이었어.
불안과 반란도 존재했던 이면
겉으로는 불교로 나라를 다스렸지만 백성들은
세금과 노동에 시달리고, 지방 귀족들은 점점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승려들은 왕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어버리면서 불교에 대한 반감과
통제 욕구도 커졌어.
이건 곧 다음 시대, 헤이안 시대에서 정치와
불교를 분리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