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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북송의 찬란한 문화, 그리고...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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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특히 북송(北宋) 시대는
전쟁이 줄었고, 문학과 학문,

예술이 활짝 피어난 시기였어.

 

과거 시험은 점점 정교해졌고,
정치에 참여하는 문신(文臣)들이 많아졌지.


또 주자학(성리학)의 기초가

이때부터 다듬어지기 시작했고,
서예, 그림, 도자기, 인쇄술 등도 굉장히 발달했어.

경제도 아주 활발했어.
상업 도시가 생기고,

세계 최초의 지폐(교자, 交子)도 등장했지.

 

중국 최초의 시민 계층, 중산층이 생겨날 정도로
문화와 경제가 동시에 발전했어.

 

하지만 문제는 늘 있었지.
너무 문약해졌다는 거야.


무장 출신은 점점 소외됐고,
나라 전체가 머리만 크고,

몸은 약한 구조가 되어갔어.

 

<교자(交子) 한자사전-네이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폐(紙幣).
송나라(宋--) 때에, 쓰촨(四川) 지방에서
한 민간 금융업자 발행한
어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북방의 위협 – 거란과 금

이런 가운데, 송나라 북쪽에서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遼)가

점점 힘을 키웠어.

 

처음에는 싸우다가,
결국 전연의 맹약(1005년)을 통해
송은 요에게 매년 돈과 비단을

바치는 대가로 평화를 샀지.

 

그 다음엔 더 무서운 여진족이 등장해서
금나라(金)를 세우고,

요나라까지 무너뜨리고
결국 송나라 수도 개봉(카이펑)까지 함락시켜버려.

그게 바로 1127년 '정강의 변(靖康之變)'이야.

황제와 왕족들이 모두 금나라에 끌려가고,
북송은 그렇게 무너져버려.

남쪽으로 내려간 송 – 남송(南宋)의 시작

다행히 황제의 동생 조구(宋 고종)가
남쪽으로 도망쳐서 남송(南宋)을 세우게 돼.

 

남송은 항저우(임안)를 수도로 삼고
북방을 잃은 대신 남쪽에서 경제를 꽃피워.

 

특히 이 시기엔 '주자(朱熹)' 같은 학자가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지식과 철학이 굉장히 깊어졌어.

또 유명한 충신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이

바로 '악비(岳飛)'야.

 

그는 북벌을 주장하며 끝까지 싸웠지만,
정권 내부의 배신으로 억울하게 죽고 말아.

 

“진정한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는 말이
딱 이 시기 송나라의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지.

송나라의 끝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송나라는 몽골 제국의 강력한 힘에

버티지 못하고 1279년,

원나라에 의해 멸망당해.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북송과 남송 시기 모두 동아시아 문명

전체의 기준이 될 만큼
큰 영향을 남긴 나라였어.

종이돈, 화약, 인쇄술, 나침반 같은
‘송나라 4대 발명’도 이 시기에 나왔고,
조선과 일본, 베트남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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