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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제2차 아편전쟁, 무슨 일이었을까?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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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난징조약을 맺고 5개 항구를 열었지만
여전히 서양과의 무역을 꺼리고,
외국 공사의 북경 상주도 거부했어.

 

게다가 아편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지.

 

그 상황에서 1856년,
광저우에서 ‘애로우호(Arrow號)’라는 영국 선박이
청나라 관리에게 나포되는 사건이 벌어져.


영국은 이걸 빌미로 다시 군대를 보내지.

그리고 이번엔 프랑스도 영국 편에 붙어 함께 침략해.
(프랑스는 한 선교사의 죽음을 구실로 참전)

 전쟁의 전개

  • 광저우 함락,
  • 톈진(天津)까지 진군
  • 1858년 텐진조약(天津條約) 체결
    (외국 공사 북경 주재 허용, 개항 항구 확대 등)

청나라는 이 조약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다가
영국·프랑스군은 다시 진군해서
1860년엔 베이징까지 점령,


원명원(圓明園, 황실 정원)을 불태워버리지.

이건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역사적 분노를 안겨주는 사건이야.

 최종 결과 – 베이징조약(1860)

  • 톈진조약 재확인
  • 베이징까지 외국 공사 상주 허용
  • 외국인의 전 중국 여행 자유화
  • 더 많은 개항 항구 개방
  • 영국에 ‘주룽반도’ 영토 할양

청나라는 이때 완전히 외국 열강의 통제 아래 들어가기 시작했어.

이번에는 중국의 3개 불평등 조약을 정리해봤어!

 

👉  흐름으로 보면 이런 느낌이야!

1단계 – 난징조약
 “문을 열어. 우리가 너랑 무역 좀 하자.”
 (청나라) 처음엔 충격,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열어줌.

2단계 – 텐진조약
 “문 열었으니까 이제 안방(북경)에도 우리가 들어가서 살아야지.”
 외교적, 종교적, 문화적 간섭 시작.

3단계 – 베이징조약
 “문 열고, 들어가고, 싫다니까 군대 끌고 가서 쑥대밭 만들고,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혔다.”
 전쟁에서 패하고, 수도까지 점령당한 끝에 굴복.

 

 

2차 아편전쟁은 1차보다 더 굴욕적이었고,

더 파괴적이었어.

베이징까지 외세가 쳐들어왔고, 

황실의 권위도 무너졌어.

 

이후 청나라는 점점 ‘반식민지화’되면서,
국민 내부에서도 체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게 돼.

 

백성들의 마음도 무너졌다

전쟁에서 진 것도 충격이었지만,
더 무서운 건 백성들의 ‘믿음’이 무너졌다는 거야.

  • “황제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이 거짓이었나?”
  • “우리 군대는 왜 이렇게 약한 거지?”
  • “저 외국놈들은 도대체 뭐길래 우리가 이기지 못하지?”

사람들은 점점 청나라라는

나라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어.


농민 반란의 씨앗도

이때부터 자라기 시작했지.

서양의 문은 열렸고, 청나라는 고립됐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미국, 러시아도
‘우리도 저런 조약 원해!’ 하면서

들어오기 시작했어.

 

청나라는 하나하나 다 받아줄 수밖에 없었고,
나라 전체는 점점 ‘반쪼개진 채로’ 열려가기 시작했어.

 

이때부터 ‘반식민지화’라는 단어가
중국 역사에 등장하게 돼.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아편전쟁은 끝났지만,
청나라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어.

 

서양은 더 많은 걸 요구했고,

내부 반란은 끊이지 않았고,

개혁은 너무 느리고,

체제는 이미 낡아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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