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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청나라가 무너진 후, 중국이 겪은 험난한 여정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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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물러나다 – 신해혁명과 청나라의 종말

1911년 가을, 우창(무창)이라는 곳에서 총성이 울렸어.
그게 바로 신해혁명의 시작이었지.

 

혁명 세력은 황제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고,
전국 곳곳에서 봉기가 들불처럼 번져갔어.

 

당시 청나라 조정은 이미 군대도 약하고,

백성들도 등을 돌렸고, 행정도 엉망이었어.
그래서 끝까지 버티질 못했지.

 

결국 1912년 2월 12일,
어린 황제 푸이가 공식적으로 퇴위하면서
276년간 이어진 청나라는 그렇게 조용히 끝이 났어.

 쑨원의 삼민주의와 공화정의 탄생

혁명의 중심에는 쑨원이 있었어.


그는 '삼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공화국,

그러니까 중화민국을 만들고 싶어했지.

그래서 1912년 1월 1일,
쑨원은 임시 대통령이 되면서

황제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어.

 

하지만 현실은 달랐어.

지방은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중앙정부는 힘이 약했지.


게다가 대부분 백성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농촌에서 살고 있었어.

무엇보다 쑨원은 군대도 없고, 돈도 없고,

정치적으로 기댈 조직도 없었어.

 권력은 실력 있는 자에게 – 위안스카이의 등장

그때 청나라 쪽에 실제 군사력과

관료 조직을 쥐고 있던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위안스카이였어.

 

쑨원은 위안스카이에게 이런 제안을 했지.

“황제를 퇴위시키면, 대통령 자리를 넘겨줄게.”

 

위안스카이는 바로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푸이 황제가 물러나게 된 거야.

 

그래서 쑨원은 자리를 내주고,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의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됐어.

 황제의 망령 – 위안스카이의 배신과 몰락

처음엔 위안스카이도 '공화국 대통령'답게 행동했지만,
곧 본색을 드러냈어.

 

국회를 무시하고, 언론을 억압하고

정적은 잡아들이고, 결국엔 1915년,

스스로 황제를 하려고 했지.

 

그는 ‘중화제국’ 부활을 선언했어.
결국 국민들도, 군벌들도 다 등을 돌렸어.

 

그래서 황제 자리에 오른 지 83일 만에 포기했고,
그 다음 해인 1916년, 병에 걸려 죽었어.

 

결국 그는 공화정 대통령이 되었다가,

황제가 되려다 망한 사람으로 기억됐지.

 황제가 사라진 후 – 푸이의 삶

푸이는 3살 때 황제가 됐고,
6살 때 퇴위했어.


퇴위한 뒤에도 한동안은 자금성 안에서 살 수 있었지.

비록 진짜 황제는 아니었지만,
제사도 지내고 옛날 예법도 지키면서 지냈어.

 

근데 1924년, 군벌 펑위샹이 자금성을 강제로 비우면서
푸이는 결국 황제라는 신분과도 완전히 이별하게 돼.

 

그 뒤로 푸이는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가 되기도 했고,

 

일본이 망하자 소련군에게 잡혀가서,

나중에 중국 공산당 정권 아래에서

‘평민’으로 교화되었어.

 

훗날 그는 베이징 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이렇게 말했대.

“나는 이제 공민입니다.”

 나라 없는 나라 – 군벌 난립 시대

푸이가 자금성을 떠날 즈음,
중국은 말 그대로 ‘나라가 아닌 상태’였어.

 

각 지방엔 군벌 장군들이 자기 군대,

자기 돈, 자기 법을 가지고
작은 왕국처럼 다스리고 있었지.

 

백성들은 세금은 두 배로 내야 했고,

전쟁과 약탈에 시달렸고,

누가 대통령인지도 모른 채 살았어.

 

이건 진짜 나라라고 부르기도 힘든 상태였지.

 새로운 두 흐름 – 국민당 vs 공산당

이 혼란 속에서 두 세력이 등장하게 돼.

 

하나는 국민당.
쑨원이 만들었고, 나중에 장제스가 이끌게 돼.
목표는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는 거였지.

 

또 하나는 공산당.
마오쩌둥이 중심이 돼서
농민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갔어.

 

처음엔 두 세력이 잠깐 협력했지만,
곧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내전이 벌어졌어.

 

이 싸움은 나중에 현대 중국 vs 대만이라는

갈라진 현실로 이어지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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