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진 십자군 전쟁에 대한 것이야.
무려 200년 동안 여러 번 이어진 이 전쟁에서는 기적 같은 일도, 믿기 어려운 일도 참 많이 일어났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어린이 십자군: 아이들이 성지를 되찾겠다며 떠나다!
1212년 어느 날이었어. 프랑스와 독일에서 수천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었지. 그들은 믿었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이다!"
이 아이들은 무기를 들지도 않고, 전사도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되찾겠다고 길을 나섰어. 그때 당시 많은 어른들이 십자군 원정을 떠났고, 아이들은 자신들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그 순진한 마음이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만나고 말았어.
아이들은 험난한 길을 걸으며 굶주리고 병들었어. 중간에 많은 아이들이 쓰러졌고, 겨우겨우 지중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반긴 건 십자군 전사가 아니라… 노예상인들이었어.
"자, 이제 배에 타렴! 너희를 예루살렘까지 데려다줄게!"
하지만 배가 도착한 곳은 성지가 아니라 이집트의 노예시장이었지. 아이들 대부분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마음은 순수했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냉혹했던 거야.
예루살렘 공성전: 피로 물든 성전(聖戰)
1099년 첫 번째 십자군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했어. 성벽을 넘기 위해 며칠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 그리고 마침내 성문이 뚫렸어!
그런데 그 순간부터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 성 안에 있던 무슬림과 유대인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어. 십자군은 신의 뜻이라며 마을 곳곳에서 학살을 벌였거든. 당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
"말들의 발목까지 피가 차올랐다."
심지어 성전에서 기도하던 사람들까지 칼에 쓰러졌어. 말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네…
전쟁은 때때로 신의 이름 아래에서도 너무나 잔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인 듯 해.

살라딘과 리처드 왕의 기묘한 우정
하지만 십자군 전쟁이 항상 그렇게 잔인하기만 했던 건 아니야. 1187년, 위대한 이슬람 장군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다시 되찾았어. 그런데 살라딘은 1차 십자군처럼 무차별 학살을 하지 않았지.
그 후, 영국의 리처드 1세(사자심왕) 가 새로운 십자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왔어.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웠지만, 서로를 깊이 존중했어.
어느 날 리처드 왕이 심하게 병이 났는데, 살라딘이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어.
"진정한 전사는 쓰러진 적을 짓밟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왕실 의사를 보내 리처드를 치료해줬어! 그리고 한 번은 리처드 왕의 말이 죽자, 살라딘이 새 말을 선물해주기도 했지.
결국 두 사람은 협상을 했고, 크리스트교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합의했어. 전쟁터에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아름다운 이야기였지.
4차 십자군, 목적을 잊고 동로마를 약탈하다!
원래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되찾으려고 떠난 거잖아? 그런데 1204년, 4차 십자군은 엉뚱한 곳을 공격했지 뭐야. 예루살렘이 아니라, 같은 크리스트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었어!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원래 십자군은 베네치아에서 배를 빌려 중동으로 가려 했는데, 배 값이 너무 비쌌어. 그러자 베네치아 사람들이 말했지.
"우리 대신 동로마를 공격하면, 배를 공짜로 빌려주지!"
그래서 십자군은 성지를 되찾기는커녕 같은 크리스트교 국가를 불태우고 약탈했어. 심지어 황금으로 뒤덮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도 약탈당하고, 수많은 보물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어.

이 일 때문에 크리스트교 세계는 오히려 더 큰 분열을 맞이했고, 십자군의 명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지. 결국 4차 십자군은 십자군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원정이 되고 말았어.
마무리
십자군 전쟁은 단순한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었어. 순수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권력을 탐한 사람들, 욕심에 이끌린 사람들도 많았지.
전쟁 속에서도 살라딘과 리처드 왕처럼 서로를 존중한 전사들이 있었고, 어린이 십자군처럼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