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로마 제국이 둘로 갈라지고,
동쪽에서는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수백 년 동안 터키 땅을 지배하게 돼.
우리가 잘 아는 로마 제국이
어떻게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으로 바뀌고,
그 중심이 어떻게 현재의 터키,
특히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는지 알아볼게.
이건 단순한 제국의 연장이 아니라,
서양 고전 문명과 그리스도교가
결합된 동방 로마 세계의 탄생이고,
터키 땅이 기독교와 로마 문명의
최전선이 된 역사적인 변화야.
콘스탄티노플에서 다시 피어난 제국의 꿈
로마가 너무 커져버린 게 문제였어
고대 로마 제국은 한때 지중해 전체를
둘러싸는 초대형 제국이었어.
그런데 나라가 너무 커지면 생기는 문제,
뭐가 있을까?
세금 관리도 어렵고,
국경 방어도 힘들고,
행정 명령 하나 전달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그래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서 다스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아예 동쪽으로 옮기면서 벌어져.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새로운 로마’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해당하는 ‘비잔티움’이라는 도시를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도시)로 이름 짓고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아.
그리고 그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제국 전체에 기독교 문화를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해.
그 덕에, 로마의 후계자이자 기독교 문명의 중심인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이 본격적으로 출범한 거야.
왜 ‘비잔틴 제국’이 아니라 ‘동로마 제국’일까?
사실 비잔틴 제국이라는 말은 나중에 역사가들이 붙인 이름이야.
그 당시 사람들은 자기를 여전히
로마인(Romanoi)이라고 불렀고,
로마 제국의 후계자라는 자부심이 엄청났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언어는 그리스어로 바뀌었고,
문화도 로마보다는
헬레니즘(그리스적 전통)에 가까웠고,
정교회(동방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지.
이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비잔틴 문명의 특징이야.
콘스탄티노플 – 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도시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요새였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성벽은 이중으로 두르고,
황금의 뿔이라 불리는 천연항구까지
갖추고 있었지.
덕분에 이 도시는 수백 번의 침략을 견디고,
무려 천 년 동안 수도로 유지됐어.
→ 로마가 무너진 뒤에도, 콘스탄티노플은
문명의 중심으로 살아남은 거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려 한 황제
6세기, 동로마 제국엔
가장 유명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있었어.
그는 로마법을 정리한 법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만들고,
한때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스페인 일부까지 재정복하면서
진짜 로마를 되찾겠다는 꿈을 꿨어.
그가 만든 하기아(아야) 소피아 성당은
지금도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대 성당 중 하나야.
비잔틴 제국의 특징 – 그리스도교 + 황제의 결합
동로마 제국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엮여 있었다는 것이야.
황제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고,
교회는 국가 운영에 깊이 관여했어.
이건 훗날 유럽 중세 왕권과 교황의
충돌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야.
비잔틴에선 황제가 곧 교회 수장이기도 했던 거지.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어
비잔틴 제국도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에선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
슬라브족, 튀르크족과 계속 싸워야 했고
내부에선 귀족과 종교 지도자들 간의
갈등이 격해졌어.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아예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제국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돼.
→ 잠시 라틴 제국이 들어섰다가
다시 회복되긴 했지만,
제국은 점점 옛 영광을 잃어가게 돼.
비잔틴 제국은 고대 로마의 정신,
그리고 기독교 문명의 심장을
천 년 이상 유지한 제국이었어.
지금의 터키, 특히 이스탄불은
그 찬란했던 문명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그 유산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