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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이야기] 메흐메트 2세와 콘스탄티노플 함락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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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스만은 점점 주변을 정복하며
제국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어.


그리고 마침내 1453년,
세계를 뒤흔드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게 돼.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세계사 속 대사건,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

이야기로 들어갈 차례야.


이건 단순히 한 도시가 무너진 사건이 아니야.
천 년을 이어온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순간,
중세의 종말,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진짜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선 순간이기도 하지.

 

그 중심엔 단 한 명의 젊은 술탄이 있었어.
바로 메흐메트 2세(Mehmet II),


‘정복자(Fatih)’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적인 군주야.

 

천 년의 도시가 무너지고, 오스만이 세계의 중심에 서다

젊은 술탄, 큰 꿈을 꾸다

 

1451년, 메흐메트 2세는 겨우 19살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되었어.

가상


하지만 그가 바라본 건 단순한 통치가 아니었지.

그의 눈엔 아직도 유럽과 아시아를 갈라놓고 있는,
그리고 천 년 넘게 버텨온 마지막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있었어.

 

그곳을 점령한다는 건,
로마의 후계자라는 명분까지 가지는 것이었고,
오스만 제국이 진짜 제국이

되는 관문이기도 했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콘스탄티노플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렸어.

이중·삼중 성벽,

해상은 황금의 뿔(골든 혼)과 쇠사슬로 차단,

도시 자체도 지형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구조였어.

이 도시를 무너뜨린다는 건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였지.

하지만 메흐메트는 달랐어.

전쟁 준비 –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한 전략과 기술

그는 공격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어.

 

‘우르반(Urban)’이라는

헝가리 출신 기술자를 고용해
당시 가장 거대한 대포, ‘바실리카’를 제작해서 

유럽의 포위망을 피하기 위해
선박을 산 위로 끌고 육상 이동시켜.


골든 혼 안쪽에서 해상 공격을 감행

수만 명의 병력, 공성탑, 터널 파기,
밤낮을 가리지 않는 대포 포격까지

그건 그야말로 집념의 총공세였어.

1453년 5월 29일 – 성벽이 무너지다

53일 동안 이어진 공성전 끝에,
1453년 5월 29일 새벽,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의 성벽 일부가 무너졌고,
오스만 군대가 도시 안으로 밀려들어왔어.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직접 칼을 들고 싸우다 전사했고,
천 년 동안 이어온 로마 제국의

마지막 불꽃이 꺼졌어.

메흐메트 2세, 정복자(Fatih)가 되다

메흐메트는 도시를 함락한 뒤
곧장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으로 들어가
그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꿔버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도시의 주민 보호를 명령하고,

기독교 교회도 일부 보존하며,

도시를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인이

공존하는 다문화 도시로 만들려 했어.

 

이건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제국의 중심을 세우려는

전략이었던 거야.

 

그 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지.

중세의 끝, 새로운 시대의 시작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유럽 전체에 충격을 안겨줬고,
이 사건을 많은 역사가들은
‘중세의 끝, 근세의 시작’이라고 불러.

 

왜냐하면 로마 제국이 완전히 사라졌고

동서 기독교의 분열이 결정적으로 굳어졌으며

유럽은 더 이상 아시아로 가는 육로가 막히자
신항로 개척(대항해 시대)으로 눈을 돌리게 돼

 결과적으로 오스만의 승리는

유럽의 근대화를 자극한 셈이야.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문명의 전환점이었어.

 

메흐메트 2세는 중세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로 기록되었고,
이스탄불은 지금도
동서 문명이 만나는 가장

상징적인 도시로 남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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