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정확히 말하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나라야.
터키 영토 대부분은 아시아에 속해 있고,
그 지역을 '아나톨리아' 또는
'소아시아'라고 불러.
이스탄불은 유럽 쪽에 걸쳐 있지만,
전체 국토의 약 97%가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어.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아시아사의 중요한 한 축이야.
터키 땅에서 가장 먼저
찬란한 문명을 이룬 고대 제국,
히타이트 제국(Hittite Empire) 이야기부터 해볼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모르는
고대 세계의 한쪽 귀퉁이에서
놀랍게도 이집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강력한 제국이 있었다는 걸 보여줘.
이집트와 맞설 정도로 강했던 철기 시대의 개척자
아주 오래 전,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짓고, 메소포타미아에서
함무라비가 법전을 새기던 그 시절,
지금의 터키 중부, 즉 아나톨리아 고원에서도
조용히 거대한 문명이 자라고 있었어.
그 문명의 주인공이 바로 히타이트 제국이야.
변방에서 제국으로 – 히타이트의 성장
히타이트는 처음엔 그냥 북부
아나톨리아의 작은 부족이었어.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점점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서,
바빌로니아, 이집트 같은 거대 제국과도
맞먹을 정도로 커졌지.
기원전 17세기쯤, 하투사(Hattusa)라는
곳을 수도로 삼고 정식으로 제국을 세웠어.
지금은 그곳에 거대한 유적이 남아 있어.
철의 제국 – 히타이트의 비밀 무기
히타이트가 강해진 이유 중 하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철제 무기’를
만들 줄 알았다는 것이야.
청동보다 단단하고 오래가는
철기를 먼저 써서 전쟁에선
거의 무적이었지.
이들이 만든 철제 칼, 철제 갑옷,
철제 바퀴 전차는 고대 세계에서
‘게임 체인저’ 같은 존재였어.
그래서 히타이트는 역사상 최초의
철기 문명을 연 국가 중 하나로 평가돼.
카데시 전투 – 이집트와의 맞대결
히타이트가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건이 있어.
바로 카데시 전투(기원전 1274년)야.
이건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무왓탈리 2세가
지금의 시리아에서 정면으로 맞붙은 전투야.
전쟁은 승패 없이 끝났지만,
이게 고대 세계 최초의 기록된
평화조약으로 마무리됐다는 게 중요해.
→ 카데시 조약이라고 불리지.
이 조약은 지금도 유엔 본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어.
그만큼 고대 외교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야.
사회와 문화는 어땠을까?
히타이트 사람들은 단순히 전쟁만 잘한 게 아니야.
여왕도 정치에 참여했을 만큼
여성의 권한이 컸고,
종교는 자연신 중심 다신교였는데,
이집트, 바빌론, 심지어 그리스 문화까지 흡수하면서
다문화적 성격을 가졌어.
문자는 쐐기문자(메소포타미아식)와
자체 상형문자를 혼용했고,
법전도 갖췄으며,
신들과 계약을 중시했어.
→ 이 점은 나중에 유대교·기독교에도
영향을 줬다는 학설도 있어.
하지만 제국은 영원하지 않았다
기원전 1200년 무렵,
히타이트 제국은 갑자기 붕괴하게 돼.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바다 민족’의 침입,
그리고 기후 변화,
내란 등이 겹쳤던 것으로 보여.
히타이트는 사라졌지만,
그 문명의 일부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작은 나라들로
남아 이어지게 돼.
히타이트는 지금은 잊힌
고대 제국이지만,
철기를 먼저 사용하고, 이집트와 대등한
조약을 맺은 최초의 외교국,
그리고 다문화, 여성 참여,
법과 종교의 조화를 이룬 문명이었어.
우리가 터키라고 하면
오스만만 떠오르기 쉬운데,
사실 그 땅에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강력한 제국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
그게 바로 히타이트가 주는 첫 감동이야.